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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은 모르는 게 있으면 네00에 물어보고, 미국 사람은 모르는게 있으면
유튜브에 물어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유튜브는 우리 생활 밀접한 곳으로 들어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유튜브에 '설마 이런 것도 있겠어?' 라는 생각으로 검색을 하면..자동검색어까지 가동이 되어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보여주곤 한다.
터무니 없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유튜브의 
AI(인공지능)는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에 최대한 가까운 영상을 꺼내어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방송 등 모든 컨텐츠가 담긴 유튜브는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자극적이고 위험한 영상도 찍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사로서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바를 말로만 한다면, 잔소리만 한다면 아이들은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을 믿으며, 본인들의 마음이 움직일 때 비로소 몸이 움직이는 아주 '예민한" 고객이시다. 그래서 유튜브를 운영하게 되었다.


유튜브를 활용하는 이유

첫째, 내가 가르치는 수업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둘째, 반 마다 반복되는 설명을 줄이고 실제 못브과 가장 유사한 환경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눈 앞에 있는 교사의 시범을 쉽게 쉽게 언제 어디서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셋째, 요즘은 누구나 휴대폰과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이 가능하기에 언제고 검색하고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넷째, 아이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유튜브에 나올 때 부끄러워 하기도 하지만, 부끄러운 단계만 살짝 넘어가면 오히려 더 나오고 싶어서 애를 쓴다. 이것은 학생들에게 적잖은 동기유발 촉매제가 된다.

위와 같은 이유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수업의 여러 모습들을 담고자 한다.

그런데 영상을 찍는 것보다 붙이고, 소리 넣고, 자막넣고 ...편집을 하는 것이 참으로 번거로운 일이다. 이 부분은 내가 더 공부를 해야할 부분이고.

오늘도 아이들과의 하루 수업을 유튜브라는 일기속에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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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은 경기를 이길 수 있게 한다.
하지만 팀워크와 이해력은 챔피언을 만들어 낸다.    -마이클 조던-



학생을 지도할 때 늘 염두해야 하는 것은 '눈높이'
선수의 신체와 운동수준과 능력을 고려한 연습이 되어야 하지, 무턱대고  프로선수들의 패턴을 반복시키려고 한다면, 시키는 지도자도 힘들고, 학생들도 '이걸 왜 하고 있나' 라고 생각하며 그나마 가지고 있던 농구에 대한 정이 떨어질 수 있다.




전략과 패턴 사용시 간과해선 안될 부분은 바로
'모든 작전은 예측이 불가능해야 한다.' 이렇게 들어가면 저렇게 나올 것이다 라는 식의 예측이 가능하다면 작전이 먹힐 리 없다.

모션오펜스(motion offense), 농구의 가장 기본적인 플레이로 패스와 스크린 커트를 활용한 패턴 플레이다. 뻔하게 보이지만 계속해서 스크린을 걸어주고 빠지고, 패스하고 빠지는 식의 연속된 동작을 가져단다. 이를 통해 언제, 누가, 어디서 찬스를 잡을지 예상하기 힘들다.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농구전술(김대범) 中 -




모든 움직임에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한 번의 움직임에도 속임 동작(페이크)를 가미해 수비를 고민하게 해야 한다. 경기 중 의미없는 드리블과 패스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수준이 낮은 학생들의 경기에서는 아무도 막지 않는 골 밑 득점 찬스에서도 멀리 있는 팀 원에게 패스하다가 턴오버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움직일 때 왜 움직이는 가를 생각하고, 나를 막는 수비를 항상 고민하게 해야 한다. 그럴 때 공격 성공률을 높이 가져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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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근무하다 보면 모든 일에 적극적인 학생이 있고, 무슨 일이든 빠지고 싶어하는 소극적인 학생들이 있다.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적극적 학습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올라오는 이 시기는 주변의 시선에 매우 민감한 시기다. 본인이 잘 하는 행동은 자신있게 보여주며 인정을 받고자 하고, 못하거나, 창피를 당할 것 같은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들이 놀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을 밖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아이의 학습을 촉진하는 세 가지 원칙

1. 개인 능력의 원칙
능력은 저마다 다르니 능력에 맞춘 과제를 설정할 것. 교사나 부모가 제시하는 일괄적인 기준은 학생으로 하여금 포기하게 만들거나, 너무 시시하여 도전하기 조차 꺼려하는 과제일 수 있다. 아이를 잘 관찰하여 수준에 적합하고, 능력이아닌 노력에 따라 달성 가능한 과제를 부여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 대한 괄찰과, 통찰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과제가 주어질 때 최고의 동기가 유발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2. 개인 속도조절(페이스)의 원칙

학습달성 속도는 개개인마다 다르니 당사자의 학습 페이스에 맞출 것.

과제를 제시한 후에
"모두 다 했지?" 라며 아이들의 학습속도를 제한하려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조금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개별적인 피드백과 과제 수행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3. 개별에서 집단으로의 원칙

우선 일대일 관계를 구축한 뒤 소규모집단에서 학습하게 하고 조금씩 규모를 늘려갈 것.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체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피드백을 제공한다면, 학생들은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 혹은
"어차피 선생님은 나한테 관심도 없을텐데 뭘" "나하나쯤 안해도 아무도 모를꺼야" 라는 생각을 하며 회피하게 된다. 교사의 관심을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골고루 나누어 학생 본인의 행동을 교사가 항상 지켜보고 있음을 느끼게 한 후에 집단적 상담과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 

무언가를 주저하고 소극적인 아이들에게는
나이키의 슬로건인 just do it
그냥 해봐~ 일단 해봐
전략을 적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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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의 폐지를 둘러싼 논란.
자사고의 폐지는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반고로 전환되는 흐름을 막기는 어려워보인다.
일시적 폐지보다는 단계적 절차를 통한 일반고로의 전환을 도모한다는 취지.

자사고의 폐지를 주장하는 쪽의 입장은 자사고가 대학입시의 예비적 성격을 띄고, 선행학습을 조장하고, 무분별한 사교육비를 조장, 자사고의 경제적 부담등이 교육의 사회통합적 기능과 역행한다는 것이다.

자사고의 존립을 주장하는 자들의 주장은 자사고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하여 학교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통해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이 가능하고, 분야별 전문가를 양성하는데 적합하다는 것이다.

여기엔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져 있다.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정부와 교육부
학생을 당장 입시에 투입해야 하는 학부모
그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는 교사
자사고라는 상품을 통해 장사를 해야 하는 학원 강사

이러한 어른들에 의해 휘둘리는 학생들.

자사고의 폐지가 '옳다, 그르다' 라는 판단의 대상이 될 것은 아니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순기능과 역기능을 갖게 될 것이다.

자사고에 보내지 않고도 만족스러운 입시와 취업이 가능한 사회라면
자사고를 가야만 좋은대학- 좋은 취업- 인생보장  이라는 잘못된 인식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자사고라면...단지 부모의 능력이 학생의 고입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것이라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학생들에게는 넓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겐 턱없이 높은 학교라면
잘못된 것이지 않을까.

학생과 학부모들의 입장을 어느 한 편에 서서 '옳다, 그르다'를 따지기 이전에
우리는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하고 있을까 반성해야 한다.

"어느 학교, 어느 자리에서건 선생님은 너희에게 자신있는 교육을 하고 있고,
너희가 어느 곳에서라도 열심히 한다면 원하는 목표를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을 ...과연 우리 교사들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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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키움 전투에서 패배한 카이사르.
훨씬 더 많은 적을 향해 적은 수의 병력으로 포위작전을 펼친 카이사르.
애시당초 카이사르의 작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시인을 했다면, 카이사르는 후세에 '책임전가'라는 오명을 받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이사르에게는 후세의 평가, 아니 지금 현재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부대를 일으켜 새로운 전열을 가다듬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카이사르는 병사들을 모아놓고 이야기 했다.
"ㅣ번 패배는 다른 어떤 것에 다 핑계를 대더라도, 나에게는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나는 병사들에게 유리한 지형을 내놓았고, 적을 작전으로 유인했으며, 항상 어려운 상황에서도 승리를 이끌어왔다. 이번 패배는 너희(병사)들의 오판과 무책임의 증거이다" 라며 병사들을 다그쳤다. 병사들은 그런 카이사르에게 미움이나 반항심따위보다 정말로 ㄷ자신들의 책이므올 인한 패배에 부끄러움과 울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명장의 훈계를 받는 병사의 마음인가보다.

사람은 누구나..어려움을 겪었을 때
"내 책임이 아니야" 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내기 어려워진다. 내 책임이 아니니 더욱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카이사르는 이 점을 이용하여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전열을 가다듬기 위한 작전으로 연설을 한 것이다.

일장연설을 들은 병사들의 마음속엔 명장에게 패배를 안긴 치욕스러운 병사라는 부끄러움이 가득했고, 스스로 자처하여 처벌을 받기를 원했다.

카이사르는 로마의 형벌 중 가장 지독하다는 10분의 1형 (명 중 1명을 차출하여 나머지 9명이 때려죽이는 형벌)을 내렸다. 하지만 선언만 했을 뿐 미루고 미루어, 실제 형벌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카이사르는 디라키움 전투에서 많은 병력을 잃었고, 자신의 부하인 도메티우스의 병력과 합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폼페이우스와 더 멀리 떨어져 도망을 쳐야하는 형세를 벌여야 했는데, 이때도 카이사르는 도메티우스와 병력을 합치는 것과 더불어 다른 목적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카이사르는 한 가지 행동에, 한 가지 이상의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이었다.

모든것이 부족한 상태에서 전쟁이 장기화되면, 모든 것이 풍족한 적에게 이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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